X. 목자로서의 루터

루터가 대적을 싸우고 카톨릭 교회에 대해 강한 저항을 하고 있을 때 그는 또한 하나님의 양들을 지키며 돌보았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기록하기로 그는 도시에 있는 양떼를 내버려두고 시골 교외로 가고싶어 했다고 했습니다.

다루기 힘든 회중들로부터 벗어나 동물들의 정다운 눈을 바라보는데 내가 무엇을 드리지 않으리요. [2]

루터는 목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1522년부터 1535년까지 살아있는 말씀을 사역함으로 신실하게 양떼를 돌보았습니다. 그는 일주일에 몇 번씩 성경의 여러 책들을 다뤄 설교했습니다. 그는 베드로 전후서와 유다서와 창세기와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관해 설교했습니다. 그는 또한 소선지서와 전도서와 이사야와 그가 가장 좋아했던 갈라디아서도 다루었습니다.

...살아있는 말씀을 사역함으로 신실하게 양떼를 돌보았습니다.

 

루터가 집회에 기여한 것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회중이 찬송하는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이 요소를 발전시켜 그가 회중 찬송의 아버지라고도 여겨집니다. 이것이 그의 모든 믿는 이들의 제사장 직분에 관한 교리가 가장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입니다. 루터 전에는, 예배가 전적으로 식을 집행하는 성직자들과 성가대에게만 한정되어 있었고 회중은 몇 문답만 암송했을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반적인 것은 루터의 시대에 완전히 낯선 것이었습니다. 찬송하는 실행은 일주일 동안 회중 전체를 위해 짜여졌습니다. 루터는 온 가족이 교습 후에는 집에 함께 모여 찬송하기를 격려했습니다.

병들고 가난한 자들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루터의 습관이었습니다. 종종 그는 영적 상담과 도움을 요청 받았습니다. 그는 대적의 유혹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해 상담하는데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는데 이는 마귀가 종종 그의 믿음을 훼손하고 그의 저항을 부인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대적은 심지어 그가 자고 있을 때에도 그를 고소했습니다.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침대로 갈 때 마귀는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나를 괴롭게 할 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마귀야, 나는 반드시 자야만 한다.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러니 떠나라.” 이렇게 말해도 소용이 없어 그가 죄들의 목록을 열거하면 “맞다, 늙은 녀석아, 나도 그것 모두를 알고 있다. 네가 보지 못한 몇 가지가 더 있다. 여기 그것들이 있다. 그것들도 적어라.”라고 말한다. 만약 그가 멈추지 않고 계속 나를 강하게 누르고 나를 죄인이라 비방하면 나는 “성 사단아, 나를 위해 기도하라. 물론 네가 네 인생에서 어느 것도 나쁜 것을 한 적이 없다. 너는 홀로 거룩하다. 하나님께 가서 네 자신을 위해 은혜를 얻어라. 만약 네가 나를 갱생하려면 나는 ‘의사여, 당신 먼저 고치시오’ 라고 말한다.” [3]

루터는 대적의 유혹에 대해 항상 가볍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베인튼(Bainton)은 다음과 같이 루터를 인용했습니다.

그는 “마귀와 쟁론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5000년간의 체험이 있다. 그는 아담과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모든 책략을 시도했고 그는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끈덕지다. 만약 그가 첫 번째 공격으로 당신을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그는 당신이 완전히 소모될 때까지 마찰의 포위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차라리 온 주제를 떨쳐버리는 것이 낫다. 동반자를 구하고...혼자 있지 말라. “하와가 혼자 동산에 있을 때 문제가 생겼다. 나는 혼자 있을 때 가장 최악의 유혹을 받았다.” 그리스도인 형제, 현명한 상담자를 찾아라. 교회의 교통으로 자신을 뒷바침하라. [4]

루터가 대적에게 가장 심한 공격을 받던 해 이 찬송을 지었는데 일반적으로 “내 주는 강한 성이오”란 제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견고한 보장이시니
흉악함 날 포위해도 그가 날 구하시리라
옛 원수 마귀는 여전히 틈타서 모략과 궤휼로
공격을 꾀하니 이 땅에 적수 없도다

자기 힘 의지하면은 패할 수밖에 없도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 곁에서 있지 않느냐
이 사람 주 예수 왜 의지 안하나 그는 그리스도
만군의 주시니 그만이 승리자로다

세상에 마귀 들끓어 늘 파괴 음모하여도
나의 주 나를 통하여 진리로 이기게하리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뺏긴다 해도
진리는 서리라 그 나라 영원하리라

그 말을 듣고 놀라지 않더라도
그 말을 항상 공격하리라
하나님 자신이 그 전쟁안에 있으니
아무 것도 문제 되지 않네
그들이 우리의 생명과 물건과 명예와 자녀와
아내를 취할지라도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함은 하나님이 전쟁을
이기고 그들이 승리치 못하기 때문이라 [5]

그의 일생토록 아홉 개의 찬송가를 만들었습니다. 이중 “내 주는 강한 성이오”와 “그리스도인들이여 모두 기뻐하라”와 “모든 이가 영원한 주님을 찬양해”를 비롯해 38개의 찬송을 그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또한 라틴 찬송을 번역한 것과 개혁전의 독일 찬송가들을 수정한 것과 성경을 부연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의 찬송중 많은 것들이 시편을 번역한것입니다. 루터는 특별히 시편을 좋아했습니다.

거룩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살아있는 색깔과 형태로 그려져 작은 액자 안에 넣어져 있는걸 보고싶지 않습니까? 시편을 펴서 본다면 교회가 무엇인지 보여줄 정교하고 밝고 순수한 거울을 갖게 될 것입니다...여러분은 또한 여러분 자신을 그 안에서 발견하고 하나님 외에도 여러분 자신과 모든 피조물들을 볼 것입니다. [6]

루터가 독일인들에게 기여한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번역이었습니다.

독일인들에게 루터가 준것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천년의 전통을 뛰어 넘었습니다. 루터 전에도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적이 있었는데 울필라(Ulfila)가 고트언어로 번역한것입니다. 심지어 불가타(Latin Vulgate)성경이 아니라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것도 뛰어난 용어 선택이나 압도적인 어휘나 그 지방 고유의 토성이나 루터의 [영적 깊이]가 없었습니다. 그는 “나는 모세를 아무도 유대인이라 생각 못하고 독일인처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단어를 찾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했습니다. 초벌 번역으로 그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신약은 1522년 9월에 처음 출판되었지만 1546년 그가 죽는 날 까지 그것을 교정했습니다. 그가 보았던 마지막 인쇄된 장은 가장 최근에 교정한 증거입니다. 구약은 그가 바르트부르크에서 돌아온 후 시작했습니다. 성경 전체의 완전한 번역은 1534년에 나타났습니다...때때로 루터는 한번에 가장 적절한 단어를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수고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먼저 그 단어의 원문을 말 그대로 번역합니다. 그러고 나서 각각의 단어를 분리하고 비슷한 단어들을 적어놓습니다. 그 다음 그 단어들 중에 가장 의미가 적합할 뿐 아니라 균형과 운율이 맞는 것을 찾아냅니다. 이 모든 것은 자유로이 번역해 영을 감지하도록 일단 제쳐둡니다. 마지막으로 정확하고 자유로운 것을 한데 모읍니다. 가끔 용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단어들을 찾습니다. 계시록 24장의 보석들의 이름을 지으려 그는 색스니 군주의 궁정의 보석들을 감정했습니다. 성경의 동전들은 비텐베르크에 있는 화폐 수집가와 상의했습니다. 레위기에 제사를 설명하려 염소와 황소의 내장에 대한 용어가 필요했을 때는 푸주간으로가 정육점 주인에게 여러 차례 물었습니다. 구약의 새와 짐승들은 난관이었습니다. [7]

루터는 이러한 종류의 일에 필요 조건들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번역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니다. 번역하려면 합당하고 독실하고 신실하고 부지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체험이 있고 실제적인 마음이 있어야 한다. [8]


IX.

  교회에 관한 루터의 관점

X.

  목자로서의 루터

XI.

  루터의 결혼

XII.

  루터의 죽음

XIII.

  루터를 통해 회복된 항목들

XIV.

  루터의 사역에서 결여된 것들

XV.

  결론